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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미래포럼


 

 

 

 

 

 

신각수 법무법인 세종 고문, 전 주일 대사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는 지금까지 전혀 겪지 못했던 새로운 외교환경을 접하게 됐다. 한국 외교는 70년 동안 비교적 양호한 환경 속에서 양적으로 확대되고 질적으로 성숙돼왔다. 냉전 체제에서는 한미동맹과 일본·서방과의 우호협력관계를 통해 북한을 포함한 대륙으로부터의 안보위협에 대응하고, 개방경제와 무역입국을 통해 세계를 대상으로 시장을 확보하고 번영의 길을 찾았다. 1990년대 초 탈냉전 이후 2008년 세계 금융위기까지는 냉전시대 금단의 영역이었던 북방으로 외교를 확대하고 미국이 유일 초강대국으로서 자유주의 국제질서 유지를 담보한 덕분에 우리에게 호의적인 환경 속에서 외교를 할 수 있었다. 반세기라는 짧은 기간에 산업화·민주화·세계화·정보화를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수혜 덕분이다. 초기 우리보다 앞섰던 북한을 체제경쟁에서 압도한 것은 외적 환경을 잘 활용한 바 크다. 

 

 

그러나 최근 한반도, 동아시아, 세계의 3개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는 격변은 우리를 전례 없는 외교환경으로 밀어 넣고 있다. 선진국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지고, 국내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는 가운데 자국우선주의의 유혹에 굴복하면서 전후 질서인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지탱하는 구심력이 약화되고 있다. 이와 함께 민족주의, 보호주의, 중상주의, 인기영합주의, 극단주의 등의 영향으로 국제질서의 원심력이 증대되면서 주요국들 간의 지정학적 경합이 심화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중국의 급부상이 공세적 외교안보정책과 맞물리면서 대륙과 해양세력의 각축이 본격화하고 있다. 동시에 북한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가 그대로 진행되면 핵확산금지조약(NPT) 당사국이었던 국가가 처음으로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이 돼 미국 본토를 위협하고 한반도 전략상황도 송두리째 바뀔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듯 우리가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던 외부환경이 빠르게 악화되면서, 질풍노도의 전환기에 접어들었다. 이로 인한 격랑은 지정학적으로 취약한 한국의 외교 역량을 시험하게 될 것이다. 높은 대외의존도로 외부환경이 우리 외교안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에 비추어, 중견국가로서의 역량과 외교를 통한 승수효과까지 감안해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중장기 외교 전략을 짜야 한다. 개별 현안·이슈에 매몰되기보다는 10~20년을 내다보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향후 우리 외교환경을 냉정하게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미국 경제가 부활해도 중국의 부상이 지속될 것이라는 점에서 미국이 종래 유일 초강대국의 지위를 회복하기는 어렵다. 둘째, 미국에 대한 중국의 도전은 상당 기간 세계적 차원에서는 어렵지만 지정학적으로 유리한 동아시아에서는 가능할 것이다. 셋째, 독일·프랑스·영국 등 강대국이 여럿 존재하는 유럽과 달리, 동아시아에서는 중국과 균형을 이룰 국가 또는 국가군이 존재하지 않는다. 넷째, 중국의 대외정책이 점차 공세적 성격을 더하여 동아시아에서 세력권을 형성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다섯째, 미·중 관계는 냉전 시 미·소 관계와 달리 협력과 경쟁이 공존하는 복잡한 관계로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섯째, 중·일 관계도 전략적 불신으로 인한 긴장이 지속되는 가운데 적절한 선에서 상호 관리를 꾀할 것이다. 일곱째,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등장과 함께 미국 내의 고립주의와 미국우선주의 경향이 현저한 가운데, 국제질서는 당분간 미국이 우월적 지위를 가지는 다극화 구조로 작동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가 추구할 동아시아 질서는 국제법과 유엔헌장에 따른 법치 및 열린 경제를 근간으로 하는 협치(Pax Consortis)가 돼야 할 것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 지역에서 특정 국가의 패권적 지배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점에서 역외균형자로서 미국의 지속적 관여를 통한 세력균형의 확보가 필수요건이다. 그러면서도 동아시아에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간 새로운 냉전이 조성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이와 함께 중국을 연계시키면서 지역질서의 구체내용을 만들고 이를 실행하여 갈 중층적 지역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충분조건이다.

 

우리로서는 중국의 부상으로 인한 동아시아에서의 세력전환을 평화적 변경으로 이끄는 동시에 안정되고 건전한 동아시아 질서를 창출해야 한다. 물론 우리가 혼자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인 과제다. 그러나 한미동맹을 기본으로 주변국과 연계해 가면서 동남아, 호주, 인도, 중앙아 국가들과 함께 추구해 간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긴 호흡으로 우리의 전략공간을 만들면서 노력해 가면 그 과정에서 우리의 생존, 번영, 통일을 위한 길도 열릴 것이다.

 


[신각수 법무법인 세종 고문·전 주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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