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본권 침해 길 트는 대북전단금지法
문화일보 | 입력 2020-07-21
김천식 전 통일부 차관
탈북단체들의 대북 전단 살포를 저지하라는 북한의 지난 6월 담화 이후 정부·여당은 서둘러 ‘대북전단금지법’을 만들겠다고 화답했다. 한편, 탈북단체들은 많은 압박을 받고 있다. 국제 인권단체들은 대북 전단을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운동이자 표현의 자유를 위한 활동이라면서 정부의 탈북단체 단속을 비판하고 있다. 내외 동향을 보면 전단금지법이 제정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이 법을 제정하기 전에 자유민주주의라는 국가의 기본으로 돌아가 심사숙고할 것을 제언한다.
남북한 간에 전단은 선전의 수단이었고 상대방은 이를 비방·중상으로 봤다. 남북한 간에 최초로 맺은 합의인 7·4 남북공동성명은 제1항에 통일 3원칙을 천명하고, 이어 제2항에는 상호 중상 비방 중지를 규정했다. 1991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는 제1조 체제 존중에 이어 제3조에 비방·중상 금지를 규정했다. 이렇듯 남북한 간에 이 문제는 우선적인 의제였다. 그러나 남북한이 체제의 차이로 인해 실천 조치에는 합의하기 힘들었다. 실무협상에서 북한은 남쪽에서 일어나는 북한에 대한 모든 비판적 활동을 금지하라고 요구했는데, 이를 수용하면 우리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언론·출판·집회·결사 등 표현의 자유를 모두 규제해야 한다.
하지만 역대 어느 정부도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다만, 2004년 ‘6·4 합의’ 즉 ‘서해 해상에서의 우발적 충돌 방지와 군사분계선 지역에서의 선전 활동 중지 및 선전 수단 제거에 관한 합의’를 체결한 바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쌍방의 군대가 관장하고 있는 군사분계선 일대의 심리전을 상호 중지한 것이다. 그러나 민간 영역을 규제하는 합의를 한 게 아니다. 2018년 4월 판문점선언 제2항의 관련 규정도 6·4 합의의 부활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대한민국은 인권이 국가권력에 우선한다는 원칙을 따르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정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 법률을 제정해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해선 안 된다. 이러한 원칙은 세계인권선언에도 똑같이 규정된 것이며, 민주주의 국가라면 당연히 지켜야 할 문명사회의 원칙이다. 역대 정부도 탈북단체들의 대북 전단 살포 때문에 북한으로부터 많은 압박을 받았다. 전단 살포 원점을 포격하겠다는 군사적 위협을 받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정부는 군사적 위협에는 상응하게 대처하는 한편 여러 가지 방법으로 관련 단체들의 자제를 촉구했다. 그때에도 법을 제정해서라도 대북 전단 살포를 막자는 주장이 있었으나 그렇게 하진 않았다. 기본권 보장이 국가의 존재 이유이고, 우리나라의 정체성에 비춰 그렇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북한은 정부에 대해 이 원칙을 허물라고 강요하고 있고, 우리 내부에서 이에 호응하는 사람들이 있다. 남북한 관계 때문에 대북전단금지법을 만드는 건 본말 전도다. 법률 하나 제정하는 문제로 봐선 안 된다. 이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기본권을 제약하는 위험한 선례를 만드는 것이며, 자유민주주의 원칙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또한, 북한에 우리의 법질서를 좌우할 수 있게 하는 길을 터 주는 것이다. 전단금지법이 입법되면 앞으로 북한에 우호적이지 않은 신문·방송·출판이나 집회·결사를 규제하는 법률이 계속 만들어지는 단초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북한보다 자유롭고 번영하며 세계 문명사회와 동행하고 있다. 그것이 남북한 관계에 임하는 우리의 힘이다. 북한 때문에 우월한 우리 체제의 원칙을 무너뜨려선 안 된다.
김천식 전 통일부 차관
한반도미래포럼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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