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입력 : 2019.03.20 00:06:02 수정 :2019.03.22 17:56:52
신각수 법무법인 세종 고문·전 주일대사
한반도미래포럼 이사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2차 미·북정상회담은 스몰딜이 되리라는 예상과 달리 미국의 빅딜 입장에 북한의 핵심제재 해제 요구가 맞서면서 결렬되었다. 그러나 이번 회담으로 양측의 명확한 의도를 확인한 성과도 있는 만큼 이를 토대로 새로운 비핵 평화 교섭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회담 결과의 함의를 냉정히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북한의 비핵화 약속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스티븐 비건 대표가 밝혔듯이 양측은 비핵화 개념에 합의하지 못하였다. 북한은 여전히 비핵화가 아닌 핵 군축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영변 지역 폐기만을 고집함으로써 핵물질 생산능력의 주축인 고농축우라늄(HEU) 생산시설 전부를 폐기하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 또한 영변·강선 외에 분강에도 HEU 생산시설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100개 핵탄두 제조에 필요한 핵물질 확보가 당초 예상보다 빨라질 수 있다. 한편 북한의 아킬레스건이 제재라는 점도 확인되었다. 시장화·달러화가 진행된 북한 경제가 제재로 인해 운용이 힘들다는 약점이 드러난 셈이다. 둘째, 우려하였던 트럼프 리스크는 기우로 끝난 바, 미국의 시스템이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어려운 국내 정치 입지도 영향을 미쳤다. 미국은 비핵화가 현저히 이루어질 때까지 제재를 해제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또한 미국은 결렬을 불사하면서 북한의 단계적 동시행동 입장을 견제했으며, 북한의 벼랑 끝 전술도 무산시켰다.
셋째, 북한 핵 위협에 직접 노출된 당사자임에도 미·북 교섭의 중재를 자임한 한국 정부의 역할에 한계가 드러났다. 중재의 전제는 북한의 비핵화 입장과 남북 관계 개선을 통한 비핵화 추동이었는데 모두 벽에 부딪혔다. 북한 비핵화의 약속은 진정성이 의문시되고, 미국의 제재 고수로 남북 경제협력도 힘들게 되었다.
향후 북핵 교섭의 향배는 북한이 미국의 빅딜을 수용할 것인가에 달려 있고 주요 결정 변수는 다음과 같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대북제재의 이행 상태와 북한 경제에 미칠 타격이다. 대북제재로 2018년 북한 수출의 약 90%가 감소하여 외화 수입이 현격히 줄었고 석유·정제유 수입 제한으로 경제 전반에 상당한 타격이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심각해져 경제 개발은커녕 경제 생존 자체도 위협받게 되므로 북한은 제재 우회와 중국의 느슨한 제재 이행을 꾀할 것이다. 이에 따라 북·중 관계의 향방도 관건이다. 북·중 관계는 1년에 4회 정상회담을 가질 만큼 회복·강화되었고, 중국은 대북지원 여부를 전략적 가치·부담을 비교하여 결정할 것이다. 이러한 중국의 전략계산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미·중 관계 동향이다. 중국으로서는 여러 분야에서 미국 공세에 직면하여 타협을 모색하고 있으므로 미국을 정면으로 거스르기는 쉽지 않다. 다만 중국은 대미 전략 경쟁에서 북한의 전략 가치를 중시하는 만큼 제재로 북한 경제가 붕괴하는 상황은 방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편 미국의 국내 정치도 주요 변수다. 로버트 뮬러 특검 보고서를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민주당 압박이 본격화하고 하반기부터는 2020년 대선 경쟁이 시작되면서 북핵 문제가 미국 외교과제에서 우선순위가 밀릴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모멘텀이 유지될지 불확실하다. 결국 양측의 시간게임은 제재 측면에서는 미국에, 핵무장국화 측면에서는 북한에 유리하게 전개될 것이다. 최종 교섭결과는 북한의 비핵화에 관한 전략적 결단 여부와 그 범위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톱다운 방식으로 양측 입장에 큰 간극이 드러난 이상 향후 실무회담이 쉽지 않은 데다가 북한이 미사일·인공위성 발사로 도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로서는 교섭 동력을 유지하도록 노력하는 한편 냉정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비핵 평화 전략을 짜야 한다. 비핵 평화의 3대 필수 요소인 시한 설정 포괄적 로드맵 작성, 실효적 검증체제 확립, 비핵 평화 교섭에서 한미동맹의 분리(decoupling)를 확보하도록, 대미 공조를 강화하고 한·미·일 협력체제를 복원시켜야 한다.
북한에도 비핵화 없이는 한반도 평화와 경제 발전도 불가능함을 직접 설득해야 한다. 당사자이자 촉진자 역할을 확보하기 위해 실무회담을 남·북·미 3자로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해보아야 한다. 동시에 제재에 저촉되지 않는 분야에서 북·미, 남북 신뢰 양성을 위한 제반조치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장기 레이스인 북핵게임의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끈질기고 일관되며 실용적인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신각수 객원논설위원·법무법인 세종 고문·전 주일대사
한반도미래포럼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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