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각수 법무법인 세종 고문, 전 주일 대사
앞으로 2010년대를 마무리할 제20대 국회의원들을 뽑는 4·13 총선이 끝났다. 집권 여당이 원내 제1당의 지위를 잃고 양당 체제를 허무는 제3당이 출현해 우리 정치에 커다란 지각변동을 가져왔다. 이미 주요국 언론은 여소야대 정국으로 우리 정부의 외교 추진력이 약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무엇보다 심각해지는 북한 핵 문제를 포함한 북한 문제에 대한 국제 공조 구축, 작년 말 어렵게 타결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일 합의 이행, 6월로 예상되는 중국·필리핀 중재 판결을 앞두고 파고가 높아지는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대응, 주한미군 사드(THAAD) 배치 협의 등 복잡다기한 외교 현안들을 풀어가는 데 지장이 없어야겠다. 이를 위해 여야 모두 외교안보에 대해서는 초당적 태세로 국민적 합의 도출에 더욱 힘써야 하고 정부도 정치권과 긴밀히 소통하면서 당면한 외교 현안을 착실히 처리해가야 한다.
한편 우리 외교에 중요한 서방에서는 6월 23일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에 관한 국민투표, 7월 중에는 일본의 참의원선거, 11월 8일 미국 대통령선거가 예정돼 있다. 모두 우리 외교에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 우선 미국 대통령선거의 향배가 중요하다. 현재 민주·공화 양당의 대선후보를 뽑는 예비선거가 진행 중인데, 양당 공히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제외하고는 주자들이 모두 양당 정치 스펙트럼의 좌우 극단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공화당 선두주자인 도널드 트럼프의 막말과 외교안보에 관한 무지와 편견이 유권자들에게는 거의 문제가 되지 않고 있다.
이런 현상은 미국 유권자들의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과 반발에서 비롯된다. 그 저류에는 미국 사회의 양극화와 점증하는 경제사회적 불안이 흐르고 있다. 미국인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자식세대가 자신보다 잘살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세계화·자동화·정보화로 삶이 어려워진 백인 노동자들의 커지는 불만은 선동적 인기주의의 자양분이 되고 있다. 모든 경선 후보들이 자유무역에 부정적 자세를 취하는 가운데 트럼프는 이민에 대한 배타적 태도와 함께 동맹에 대한 비즈니스적 접근까지도 노골화했다. 선거 과정에서 나타난 미국 사회의 소극적·배타적 분위기와 함께 미국 민주주의 기제의 약화는 향후 미국 대외 정책의 방향과 대외 공약 이행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걱정된다.
일본에서는 아베 신조 총리가 7월 중 예정된 참의원선거에 중의원을 해산해 양원 동시 선거를 할지 저울질하고 있다. 아베노믹스에 먹구름이 끼고 있는 상황인 데다 최근 구마모토현 지진 사태로 인해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양적완화를 통해 엔저를 유도하고 기업 이윤을 증대시켜 임금을 올림으로써 내수를 진작하고 투자를 촉진하는 선순환구조 정착을 노린 아베노믹스는 목표인 장기 디플레이션 탈출이 아직 요원한 상태다. 최근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했으나 엔화가 안정 통화로서의 수요 증가로 빠르게 절상돼 역효과가 나고 있다. 내년 4월 소비세 10% 인상 계획도 재연기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야당의 무기력과 아베 총리의 탄탄한 지지도를 기반으로 승리할 경우 헌법 개정 추진에 속도가 붙고 우파 장기 정권으로서 우리에게는 부담이 될 보수 어젠더를 추구하려 할 것이라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영국의 브렉시트 투표는 유럽 통합 향방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EU와 협의해 얻은 타협으로 EU 탈퇴를 막으려는 입장이나 당권 경쟁을 하는 집권 보수당 세력 일부가 탈퇴에 가세함으로써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탈퇴가 실현되면 서비스업 비중이 높은 영국 경제는 유럽 시장으로부터 단절되면서 타격이 예상되고 세계적으로 여파가 미칠 것이다. 중동 난민 유입 문제로 이미 몸살을 앓고 있는 유럽 단일 국경의 상징인 솅겐조약을 더욱 약화시킬 것이다. 침체된 경제로 내홍을 앓고 있는 EU의 안보적 기반도 뒤흔들 것이다. 유럽 각지에 잠재한 분열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 것이다. 미국과 EU 주요 회원국들이 영국 탈퇴에 반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여파가 아직 남아 있는 가운데 선진국의 3대 축인 미국, EU, 일본이 모두 장기 저성장 늪에서 다양한 경제사회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런 국내 문제들이 선거에 투영된 결과 소극적, 배타적, 극단적 대외 정책과 민주주의 기반 침하로 나타날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외교의 기축이 이들 국가라는 점에서 동향을 잘 관찰할 필요가 있으며, 우리도 저성장시대에 어떻게 경제·사회 통합을 통해 민주주의 기반을 유지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신각수 법무법인 세종 고문·전 주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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